비하면 역시나 역시나 그 사람이 떠오른다.
"난 비 좋아." 라고 했던. 그리고 하마터면 나로 인해 비를 싫어하게 될 뻔했던.
그 사람과의 관계에는 이제 내가 그 사람의 가슴에 박아둔 가시만 잔뜩 남아, 그나마도 난 그 사람의 가슴에 박아둔 가시 조차 내 멋대로 미화시킨 뒤 추억으로 간직해버린 지독하게도 이기적이고 잔인한 과거만 남아있다.
어찌 그리도 어리석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를 그만큼이나 사랑해준 사람도 처음이었고 내가 그만큼이나 사랑한 사람도 처음이었는데 왜 나는 그 사랑을 지키고 보듬고 가꾸어나가긴 커녕 그 사랑에 상처입히고 흉터를 남기는데에만 급급했었나.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일생의 유일한 후회이니 조금은 양해를 부탁한다.
비가 오면 항상 "아 비 싫어. 학교가지 말까."라고 이야기 하던 내가 있었고, 반대편엔 "그래도 가야지."라며 토닥이던 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살던 곳엔 비가 자주 오질 않아 어쩌다가 가끔 빗방울이라도 떨어졌다 하면 기쁨을 잔뜩 담아 "여기 비왔어!"라며 외치던 그 사람이 있었다.
한 번은 아침에 같이 빗 속을 걸어나왔는데, 나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었고, 그 사람은 학원을 가야했다. 그 때 난 되도않는 어른의 훈계를 흉내내며 "학원을 빠질수야 있니. 미안하지만 학원을 꼭 가요" 라며 영화관까지 따라온 그 사람을 돌려보냈다. 물론 그 이후로 그 사람과 영화를 같이 볼 기회는 커녕 빗 속을 쓸쓸히 돌아걸어가던 기억이 그 사람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고 한다. (직접 전해들었다. 나중에서야.)
여전히 비는 도저히 온전히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비가 좋은 순간은 무조건 내가 밖을 나갈 일이 없다는 전제조건을 붙여두고 시작해야만 생길 정도로 나는 비에 대해 호감을 여는데 인색하다. 게다가 바보같이 비를 좋아했던 그 사람의 기억을 추억하게 하는 것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 후 비는 정말이지 좋아할 수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행이다.
이제 나도 이번 장마를 계기로 비에 얽힌 그 사람과의 기억을 조금 씻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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