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5/2015

네비게이션.

운전을 할 때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모르면 네비게이션을 이용한다. 아는 사람에겐 네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 길 보다 이 앞에서 좌회전으로 빠지는게 더 빠를 수도 있고 저 길은 늘 차가 많아서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네비게이션은 운전이라는 행위에 대해 늘 지적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조력자이다.
남들보다 조금 뒤쳐졌더라도 아예 잘 못 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남들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정확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네비게이션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더 많은 이들이 저 말 하나를 듣지 못해서 길을 잘 못 들어 헤메게 되었을 것이다.

내 인생의 네비게이션은 무엇일까 혹은 누구일까. 나도 내 갈 길에 대해 이리저리 조언해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난 과연 어디로 가고싶은 것일까? 에 대한 답조차 얻지 못한 채 그저 걷고있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굉장히 서글펐다. 내 삶의 목적지 하나 정하지 못해 겉에서 표류하는 삶이라니. 그래서였을까? 삶의 네비게이션 하나 없이 본인의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부러웠던건.

내 삶의 목표를 뚜렷이 세우고, 그리고나서 내 삶의 네비게이션이 되어줄 무엇인가 혹은 누구인가를 알아봐야겠다. 그 땐, 지금과 같이 표류하지 않고, 한 곳을 향해-비록 돌아가더라도- 꾸준히 나아갈테지.

10/21/2015

공간

공간이 없다.
마음에 쌓인 쓸 데 없는 짐들을 내려놓을 공간.
어차피 내 갈 길, 걸어갈 땐 다시 짊어져야 한다지만.
그래도 잠시 숨돌릴 공간이, 숨돌릴 때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없다.

조급일까 다급일까 그게 그건지 모르겠지만 휘파람을 불 여유조차 잃은 마음엔 공간이 없다.
너를 보고도 웃고, 뒤 돌아서서도 다시 웃지만, 내 마음속이 웃을 공간이 없다.

그냥. 잠깐이라도 빌려쓰고싶다.
하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빚이 산더미라, 더 이상 어딘가의 채무도 감당치 못하기 때문에, 그저 또 한탄만 한다.
그리고, 그 한탄 뒤에 다시 걷기위해 잠시 앉아 쉴 바로 그. 공간이. 없다.

9/05/2015

속쓰림

속쓰리다. 속이 쓰려온다.
하늘은 조금씩 더 내 눈가를 푸르으로 간지럽히는데 여지껏 잠들지 못한 나 쓰린 배를 부둥켜안고 눕는다.
혼자기에, 혼자이기에 조금 크게 숨을 들이켜보지만 폐부를 감싸고 도는 공기는 도리어 쌀쌀하다.
잘 시간이 되었음에도 섭리 거스르는 뇌세포들이 아우성치고 나는 그 아래에서 쓰린 배를 부둥켜안고 홀로 눕는다.
속쓰리다. 속이 쓰려온다.

3/25/2015

잃고 얻고

나 여기에 서있다.
잃고 또 얻고.

내가 서있는 이 곳은 어딜까.

여전히 내 미래는 불안하다.

더 잃기 전에 더 얻으려고 손을 뻗어본다...

얻을 수 있을까...?

12/25/2014

무엇을 하는가.

제대로 하는지를 묻기 전에 먼저 내 스스로가 무엇을 하는지를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제 삼주차, 다음주 4주차를 지나면서 한달이 지나게된다. 연구실에서의 삶과 반년간의 계약직 이외에는 내가 딱히 이런 돈을 만져볼 기회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제대로, 아니 무엇을 하고 있는건지에 대한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매번 옆 사람들을 붙잡고 묻고 묻고 또 묻고 있지만, 결국엔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깨닫기 전엔 계속 이런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는가-난 지금 여기에서-

11/26/2014

자신이 없다.

연말 즈음이 되면 자연스레 사람들을 만날 자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내 앞에도 몇몇 자리가 놓여있고, 아직까지는 참석 여부에 대해 고민중이다.

자신이 없다.
나 스스로에 대해.
이 나이 먹도록 뭘 했기에 이렇게 된 것일까.
후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자꾸 후회할 것 같다.

부끄럽다.
친구들 주변 사람들 형 누나 동생들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있다고 생각되고 그리 보이는데, 나는 아직도 내 길을 모르겠고 내 현재가 불안하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럽다.

한 때의 나는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어떤 단추를 잘못 꿰었나.
돌이켜본들 이미 나와있는 답과 변하지 않는 현재임을 알기에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했건만, 자꾸 뒤를 돌아보고 한숨을 쉬게된다.

바보같다.
곁에서 응원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이런 생각에 눈시울이 시큰거리는 내가. 이 사람들의 소중함을 진작 깨우치지 못한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11월의 어느 밤은 이렇게 찬 바람과 함께 흘러간다.

10/25/2014

기타...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코타로 오시오의 곡을 이리저리 타고 가다 들었다.


대학원 생활은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었나.

이제와서 경력에서 빼놓기엔 아쉬운, 그렇다고 넣기에도 부족한 그런 시간들.
내 나름대로의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은데.
그땐 왜 그리도 나를 돌아볼 줄 모르는 나였던가.

그렇게 내게 기타는 먼지쌓이고 줄조차 제 때 갈지 않아 녹슨 채인 추억 한 구석의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얼마전에 문득, 왠지 문득 기타를 치고 싶어서 잡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동안의 탄주를 뒤로하고 다시 기타를 세워두었다.

한 번 가본 길임에도 너무 오래전에 밟은 길이라 이젠 생소한, 한 걸음 딛기조차 머뭇거려지는 그러한 길이 되어버렸음에.
그리고 그 길을 뒤로 한채 떠나버렸던 건 2007년의, 그리고 그 이후의 나였음에.
차라리 남을 탓할 수 있으면 내 마음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덜어지련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일임에.

왠지 조금은 서글퍼졌고, 왠지 조금은 화가 났다.


음악을 삶과 일체시키는 대신 삶의 곁에 항상 두기로 결심했던 나는 어디에.
그 때는 내 삶에서 그 길이 아닌 옆 길을 걷게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싫었건만, 쌓여버린 시간더미 앞에 서있는 나는 음악과 얼마나 멀어져있는 것일까.



아쉬운 시간들. 다시 되찾을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들.
그 때 손에서 기타를 잠깐이나마 놓았던게 참 아쉽다.
이제와서 다시 잡으려니 잡히지가 않는다.

왠지 조금은 서글프고, 왠지 조금은 화가 난다.

8/26/2014

네가 누워있기에 다가갔어.
네 옆에 같이 누워 살포시 널 안으니 너도 날 안아주었어.
그대로 넌 날 조금씩 더듬으며 마치 내 온 몸을 네 손에 기억시켜두려는 듯 했고, 쏟아지는 잠과 네 품 안이라는 안정감에 네가 보던 영화 어딘가를 얼핏 본 기억으로 잠들었지.

내가 잠에서 깬 자리는 같았지만 나는 혼자였어. 마치 네 품에 안겨있던 시간이 꿈 같았고, 그 따뜻함이 거짓말같았어. 컴퓨터를 켜고 네가 어제 봤던 그 영화를 트니 내가 봤던 곳 즈음에서 멈춰있더라. 급히 네가 있을 학교로 달려갔더니 화사하게 웃지만 얄미워하는 표정으로 나중에 얘기하자고 하더라. 돌아오는 길 햇살이 너무 눈부셨어. 그리고 눈을 뜨니 햇살이 너무 눈부셔.

7/15/2014

눈을 크게 뜬다.
사위는 아직 적막에 휩싸인채 거뭇거뭇하다.
앞인지 뒤인지 구분이 채 가지 않는다.

빛이 있었다.
빛이라고 믿었고, 빛으로 보였기에.
그 곳을 향해 걸었다.
걸었고, 걸었다.

그리고 그 빛은 몇 번의 깜빡임 후에 사라졌다.
다시 눈을 크게 떠봐도, 수차례 깜빡여봐도.
빛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 짐작되는 그 부분의 잔상이 흐릿하게 잠깐. 그리고 어두워졌다.

왜.
왜 그 몇 번의 깜빡임에도 그 빛을 쫓아가지 못했을까.
왜.
왜 이렇게나 뒤쳐져선.

주변을 둘러보아도.
뒤를 돌아보아도.
방향감각마저 희미해진 채, 빛이 있었던 그 곳을 향해 걸어갈 의욕 한 줌만 남아 이 곳에서 제자리걸음을 한다.

눈 뜬 봉사.
자그마한 시냇물이 흐르는지 졸졸 소리만 들려오고.
이 냇물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가 없다.
조심스레 손을 올려 얼굴을 매만져본다.

아!
이 시냇물은 내 눈에서 시작된 시냇물이로구나!
그리고 나는 눈 뜬 봉사가 되었구나!

아무리 눈에 힘을 줘봐도, 아무리 눈을 깜빡여봐도.
지금은 소용없을걸 안다.

아마 검게 타버린 이 마을 한 구석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잘 보려하지도 않았던 그 한 구석에서. 아직 채 다 타지못한 불이 남아 빛을 보일때까진.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다. 지금은 소용없다.

적어도, 적어도 이 시냇물이 마르고 내 눈이 사물을 분간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진. 그저 검게 타버린 이 마을을 씻고 내려갈 이 시냇물이 미처 채 씻지못한 불길을 볼 수 있게 되기 전까진.

눈이 따끔거린다. 아마 그을음이 들어갔겠지.
비벼본다. 다시 젖어오는 눈시울에 시야는 어두워진다.

어둡고, 어둡다.
빛은. 빛은 아직 남아있을까.
불길은. 불길은 살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용기도 의욕도 움직일 힘도 없다.
주저앉지 않는게 용하다.

이대로, 이대로 고작 며칠만 더 있으면 나 역시 이 잿더미 위에 주저앉겠지.

아마도...

6/18/2014

내가 바라보는 젊음.

젊음은 생그럽고 발랄하며 톡톡튄다.
나와는 다른 20대를 보내는 친구들을 보면 그러한 생각이 더 크게 와닿는다.

나는 언제나 한계를 고려하고 차선책을 생각하며 살아왔고, 그러하기에 포기할줄은 알았으나 도전할줄은 몰랐다. 이런 나에게 이 친구들의 젊음은 한껏 부러움을 가져다준다.

어느새 내 스스로가 지레짐작으로 정해버린 한계라는 연못에서만 노니는것은 아닌지.
자신의 연못의 크기를 늘리고 옆의 강으로 뛰어들기도 하며 바다를 향해 헤엄쳐가기도하는 자칫 무모해보이기도 하는 그 몸짓 하나하나가 내가 그 나이였을때 가지지 못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이제와서 새삼스레 느껴지게 되버린다.

혹자가 내게 이야기하듯 어쩌면 나도 늦지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젊음 사이에서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한껏 부풀려본 꿈을 향해 내 발을 내딛는것이.
그러기엔 너무 많이 왔다는 자조섞인 웃음조차, 이보다 더 많이 갔지만 꿈을 향해 연못을 뛰쳐나온 분들 앞에선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인생을 조각하는데에 있어 겁쟁이 설계사의 관점을 버리지 못하고있다. 그 작은 연못에서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기도 하다가 스스로가 흠칫 놀라서 다시 원상복구 시켜버리기도 하다가.

나는 꿈이 없다. 아니 돈 많은 백수가 되어 내 배 굶주리지 않고 죽기전까지 펑펑 노는게 꿈이다. 이 꿈을 위해 젊을때 신나게 놀았고, 여전히 신나게 논다. 내 배 주리지 않고 놀기에는 조금 나이가 있게 되어버렸고, 신나게 노는 것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계속 주리지않고 놀 수 있게 취업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도, 내가 즐겨하는 무언가를 통한 발전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생각을 시작함과 동시에 포기라는 단어로 끝내버렸다. 어쩌면 지레짐작이라도 한계가 보였으니까.

그렇기에 어떻게보면 무모해보이기도 한 저 젊음이 부럽다. 부럽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조금의 아쉬움을 남긴채 내일은 또 내일의 즐거움을 찾아헤메야겠지.